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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왕들의 정치 개혁은 연이어 실패한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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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선왕은 권문세족을 견제하기 위해 정방을 폐지한다.
또 충렬왕때 설치된 문한서를 사림원으로 개칭한다.
권문사족을 견제하기 위해 개혁을 추진한다.
하지만 충선왕은 조비무고사건으로 퇴위 당한다.
이후 충렬왕이 다시 즉위한다.
사실 충령왕은 충선왕의 아버지다.
충선왕은 이후 원무종의 친분으로 다시 심양왕이 된다.
심양왕이란 원나라에서 고구려인에게 준 벼슬의 하나다
당시 중국의 심양지역에 고려인들이 많이 거주했는데 그 지역 책임자로 임명을 한 것이다.
충렬왕 사후 충선왕은 다시 왕위에 오르고 개혁을 시작한다.
의염창을 설치해 소금전매제를 하고 국가재정을 확보한다.
충선왕은 실제로 고려에 귀국하지 않고 전지(편지)를 통해 정치를 했기 때문에 그 개혁이 성공할 수 없었다.
충선왕이 왕에서 물러 나고 그 아들 충숙왕이 왕위에 앉는다.
그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폐사목소를 설치하는데 후에 이름을 찰리변위도감으로 바꾼다.
그의 개혁역시 원의 간섭과, 빈약한 왕권으로 실패한다.
충혜왕의 개혁정치
왕권강화와 국가 개정확보를 위해 편민조례추변도감을 설치한다.
그러나 권문세족의 반발로 실패한다.
그 이후 충목왕이 즉위하고 정방을 혁파하고자 보수세력의 반대로 실패한다.
정치도감을 설치했으나 기황후 일파인 기사만의 반대로 실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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