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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경찰간부 후보생 한국사 기출 문제 풀이 및 정리 (2014년 12월) 본문
경간 시험은 시험문제가 공무원시험과 달리 40문제나 돼네요.
아무튼 기출문제를 공부하면서 빠르게 볼수 있도록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본문의 내용은 첨부 파일(hwp)에도 있습니다.
시대 상황을 제시하고 그 시대의 유물, 유적지를 묻는 문제
1. 선민사상이 나타난 시대는?
청동기
다음 무덤은 어느 시대의 것인가?
고인돌과 돌널무덤, 돌무지 무덤
청동기
고조선의 세력 범위를 추측할 수 있는 유물?
비파형동검, 미송리식 토기, 거친무늬 거울, 탁자식 고인돌
주먹 도끼는 뗀석기로 구석기시대의 유물
빗살무늬 토기는 신석기시대의 유물
양양 오산리 유적은 신석기시대의 유적지
관습, 생활모습에 대한 설명으로 어떤 나라인지 맞추기
2. 제천행사 무천 그리고 책화라는 관습이 있던 나라는?
동예
동예는 족외혼, 책화등의 씨족 사회의 전통이 강한 나라
동예는 군장 사회에서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멸망
삼한에서는 저수지를 만들었고 논농사가 발달
고구려는 산악지역에 위치하고 농업에 불리(약탈 수렵 경제)
3. 서옥제가 있었던 나라에 대한 설명?
고구려
제천행사 동맹(10월)이 있다.
마가 우가 저가등의 관직이 있었다.
부경이라는 창고가 있었다.
초기무덤은 돌무지무덤인데 돌을 쌓고 그 주위 송백을 심었다.
왕의 무덤에 대한 설명으로 그 왕의 업적과 활동 맞추기
4. 광개토대왕릉비에 대한 설명?
이 비는 414에 건립되었다.
장수왕이 부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신묘년에 신라에 침입한 왜를 물리친 기록이 있다.
광개토대왕릉비는 어디에 있나?
중국 길림성 집안현 통구에 있다
(국내에 있는 유일한 고구려비는 충주 고구려비)
비석에는 어떤 내용이 있나?
주몽의 건국 신화가 있다.
또 요동과 만주를 정복한 것과 백제에 대한 신라에 침입한 왜구를 격퇴한 내용이 있다.
왕릉을 지키는 수묘인에 관한 기록도 있다.
5. 무령왕릉의 활동(업적)
영동대장군인 백제 사마왕은 62세가 되는 계묘년 5월 임진일인 7일에 돌아가셨다.
을사년 8월 갑신일인 12일에 안장해 대묘에 모시며, 기록하기를 이와 같이 한다.
무령왕
중국 양나라에 조공하며 외교 관계를 맺었다.
백제 사마왕이라는 칭호를 받기도 한다.
백제 수도를 사비로 옮기고 국호를 남부여라 바꾼 왕은?
성왕
효성이 지극하고 우애가 있어서 당시에 해동증자라고 불린 왕은?
의자왕
승려 마라난타(동진)를 통해 불교를 수용한 왕은?
침류왕
6. 선덕여왕대의 혼란한 상황
당태종이 붉은색, 자주색, 흰색의 3색의 모란꽃 그림과 그 씨 3되를 보내왔다. 그는 꽃 그림을 보고 “이 꽃은 절대로 향기가 없을 것이다.” 라고 말했다. 이에 씨를 뜰에 심어 그 꽃이 피어 떨어지기를 기다리니 과연 그 말과 같았다.
당 태종은 신라의 선덕여왕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우리나라(신라)의 최초의 여왕?
선덕여왕
선덕여왕의 업적
천체관측을 위한 첨성대를 세움
승려 자장의 요청으로 황룡사 9층탑을 세움
중국의 의관을 착용하고 진골에게 아홀 (牙笏)을 갖게 했던 왕은?
진덕여왕
7. 발해가 일본에 보낸 외교 문서
지금 보내온 국서 (國書)를 살펴보니 부왕 (父王)의 도를 갑자기 바꾸어 날짜 아래에 관품 (官品)을 쓰지 않았고, 글 끝에 천손 (天孫)이라는 참람된 칭호를 쓰니 법도에 어긋납니다. 왕의 본래의 뜻이 어찌 이러하겠습니까. (중략)
고 씨의 시대에 병난이 그치지 않아 조정의 위엄을 빌려 저들이 형제를 칭하였습니다. 지금 대씨는 일없이 고의로 망령되이 사위와 장인을 칭하였으니 법례를 잃은 것입니다.
위 지문은 발해 문왕이 보낸 국서에 대한 일왕의 반응이다.
문왕의 수도 천도
수도를 중경에서 상경, 동경으로 옮겼다.
북만주일대를 차지하고 산동의 등주를 공격한 왕은?
무왕
선왕의 업적
5경 15 부 62 주의 행정제도를 정비
당으로부터 해동성국이란 칭호를 얻음
8. 신라 말(9C)의 장보고
그가 귀국해 흥덕왕을 뵙고 아뢰기를, “중국의 어디를 가든지 우리나라 사람들을 노비로 삼고 있으니, 청해에 진영을 설치해 해적이 사람들을 잡아 서쪽으로 데려가지 못하게 해 주십시오.” 라고 했다. 왕은 그 말에 따라 군사 만 명을 주어 해상을 방비하게 했다.
장보고 당시의 시대상황
활발한 교역을 했던 당의 산둥반도 등주에 발해관, 신라관이 있었다.
신라는 발해를 견제하기 위해 패강(대동강)일대에 수자리(국경수비대)를 설치했다.
발해 문왕은 신라로 가는 상설교통로를 개설했다.
신라말 9C에 장보고는 전라남도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했다
태종무열왕(658)은 말갈의 공격에 대비해 북진을 설치했다.
9. 최치원의 계원필경
신이 본국의 숙위원상보(宿衛院狀報)를 보건대, 지난 건령 4년 7월 중에 신년축하 사절로 간 발해 왕자 대봉예가 글을 올려, 발해가 신라보다 윗자리를 차지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줄 것을 요청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에 대해 칙지 (勅旨)를 엎드려 살펴보니, “국명(國名)의 선후라는 것은 본래 국력의 강하고 약함에 따라서 일컬어지는 것이 아니다. 조정의 제도로서 서열에 등차가 있는 것이거늘 어찌 성쇠 (盛衰)로써 바꾸겠는가. 마땅히 옛 사례대로 할 것이니 이에 널리 선포해 알리도록 하노라 라고 하셨습니다.”
이 지문은 쟁장사건 관련된 계원필경(최치원)의 글이다.
동사강목은 안정복의 저서다.
해국지장편은 김육불이 저술한 역사서이다.
발해고는 유득공의 저서이다.
10. 견훤의 활동
당 경복 (景福)원년은 진성왕(眞聖王) 6년인데, 아첨하는 소인들이 왕의 곁을 둘러싸고 정권을 농락하니,기강은 문란해지고 흉년마저 겹쳐 백성들은 유리되고 도적들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났다. 이에 그는 은근히 반란할 뜻을 품고 무리를 모아 서울 서남의 주현을 공격하니, 가는 곳마다 호응해 불과 한 달 동안에 군사가 5,000 여 명에 이르렀다. 드디어 무진주 (武珍州)를 습격하고 자칭 왕이라 하였으나 감히 공공연히 왕이라고는 못했다.
견훤의 활약상
견훤은 900년에 전라도 완산주를 도읍으로 해서 후백제를 세웠다.
후당 남중국과 통교했다.
고려를 견제하기 위해 거란, 일본과도 교역했다.
신라의 대야성(920년)을 정복하고 상주와 영천을 습격하고 경주를 공격해(927년) 포석정에서 경애왕을 살해하고 김부를 경순왕으로 세웠다.
고려군을 공산 전투에서 대파했다.
궁예는 부석사에서 신라왕의 초상화를 발견하고 그것을 칼로 쳤다고 한다.
(삼국사기)
11. 성종과 최승로(시무 28조)
(원년) 6월에 제(制)하기를, “임금의 덕은 오직 신하의 보필에 달려 있다. 짐이 새로 정무를 총괄하게 되었으니 잘못된 정사가 있을까 걱정된다. 경관(京官) 5품 이상은 각기 봉사를 올려 시정(時政)의 잘잘못을 논하라.”하였다. 정광 행선관어사 상주국 최승로가 상서하였다. ( 92, 최승로전)
지문의 왕은 고려 성종이다.
성종의 치적
12목에 지방관으로서 주목을 파견하였다.( 고려시대 최초의 지방관)
호장, 부호장 등의 향리를 신설했다.
광종은 쌍기의 건의로 과거제를 시행했다.
숙종은 윤관의 건의로 별무반을 설치했다.
12. 대각국사 의천의 활동 (교종)
천태종을 창립
교관겸수를 주장
국청사의 창건에 참여
대장경 주석서를 모아 속장경교장총록을 간행
무신정권기 불교 개혁운동을 주도하고 최씨 정권의 후원을 받은 승려
지눌의 수선사 요세의 백련사 운동
선덕여왕때 당으로부터 선종이 들어온다.
균여는 광종과 함께 교종 중심으로 불교계를 개편하려 했다.
13. 고려전기 대외관계
송나라는 960년에 건국되었고, 고려 광종(962년) 송과 외교관계를 맺었다.
거란의 3차 침입은 고려 현종 때인 1018년의 일이다
강감찬은 귀주대첩에서 거란군에게 큰 승리를 거두었다.(1019)
윤관의 여진 정벌과 동북 9성의 설치는 고려 예종 때의 일이다. (1107)
금나라는 1115년 건국되었고, 이자겸등의 문벌귀족들은 금의 사대요구를 수용했다. (1125)
14. 고려 무신정권 최우
최우가 왕을 협박해 강화로 도읍을 옮겼다.
최우 집권기에 고려는 대몽 항쟁을 위해 강화도로 천도했다.
최우는 야간 치안 업무를 맡는 야별초를 신설했다.
교정도감은 국가 최고 기구였고, 인사 담당 기구로 정방이 설치되었다.
고려의 탄연, 유신, 최우와 통일신라의 김생을 ‘신품사현(神品四賢)’ 이라 한다.
무신 집권기의 사병 집단인 도방은 최우가 아니라 경대승이 만들었다.
15. 고려와 원의 관계, 쌍성총관부
명의 철령위 설치에 대항해 최영은 요동정벌을 주장했다.
반면 이성계는 4불가론을 들어 요동정벌을 반대했다.
원나라는 화주 지역에 쌍성총관부를 설치하고, 감찰관 다루가치를 파견했다.
공민왕 5년(1356) 왕은 유인우로 하여금 쌍성총관부를 수복하도록 했다.
명은 쌍성총관부를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하며 철령위를 설치하겠다고 통보했다.
16. 고려시대에 편찬된 서적
삼국유사는 충렬왕 7년(1281) 일연이 편찬
제왕운기는 충렬왕 13 년(1287) 이승휴가 편찬
본조편년강목 은 충숙왕 4년(1317) 민지가 편찬
향약집성방은 세종 15년(1433)에 유효통, 노중례 등이 편찬
17. 성리학의 수용 안향
충렬왕을 따라 원에 갔다가 공자와 주자의 화상을 그려와 고려에 주자학을 보급했다.
충렬왕 때 성리학을 도입한 인물은 안향이다.
이곡은 고려 말기의 학자
이색은 고려 말의 성리학자
이제현은 고려 후기의 학자이자 정치가
18. 지눌 권수정혜결사문
지금의 불교계를 보면 아침저녁으로 행하는 일들이 비록 부처의 법에 의지했다고는 하나 자신을 내세우고 이익을 구하는데 열중하며 세속의 일에 골몰한다. 도덕을 닦지 않고 옷과 밥만 허비하니 비록 출가했다고 하 나 무슨 덕이 있겠는가.
마땅히 명예와 이익을 버리고 산림에 은둔해 모임을 맺자. 항상 선을 익히고 지혜를 고르는데 힘쓰고 예불하고 경전을 읽으며 힘들여 일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각자 맡은 바 임무에 따라 경영한다. 인연에 따라 성품을 수양하고 평생을 호방하게 고귀한 이들의 드높은 행동을 좇아 따른다면 어찌 통쾌하지 않겠는가.
지눌은 정혜쌍수와 돈오점수를 주장했다.(수선사 결사 운동 주도)
지눌의 사상은 선교일치 사상을 완성한 것이었다.
의천은 교와 선의 대립을 극복하기 위해 교관겸수(敎觀兼修)를 제창했다.
요세는 자신의 행동을 참회하는 법화신앙에 중점을 두어 지방민의 적극적인 호응을 받았다.(백련사 운동을 주도)
혜심은 유불일치설을 주장하며 심성의 도야를 강조했다.
19. 조선 왕조의 성격
유교적 민본주의 (民本主義 )를 국가통치이념으로 삼았다.
사대교린의 외교정책을 취했다.
양반 사대부를 중심으로 봉건적 통치체제를 구성했다.
조선 왕조는 숭유억불 정책을 취했다.
20. 세종대왕 훈민정음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서 문자로 서로 통하지 못한다. 고로 어리석은 백성들이 말하고 싶은 바가 있어도 마침내 그 뜻을 펴지 못하는 이가 많다. 내 이를 매우 딱하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글자를 만들어 내노니 사람마다 쉽게 익히어 나날이 사용이 편리하도록 함에 있다.
세종은 삼강행실도를 한글로 편찬해 유교 윤리를 보급했다.
이두 (吏讀文)는 발음이 유사한 한자에 따온 글자다.
대부분의 양반 관료층은 한글 창제를 반대했다.
한글이 창제되기는 하였지만, 모든 서적을 훈민정음을 편찬하지는 않았다.
21. 서거정의 동문선 (독자적 의식)
조선 성종 때 서거정, 동문선 등이 편찬한 동문선 (1478)에서는 “우리나라의 글은 송이나 원의 글이 아니요, 한 당의 글도 아니며, 곧 우리나라의 글이다.” 라고 썼다.
22. 조선중기 주류세력인 사림의 사상적 특징
성리학에 대한 연구가 깊어서 조선 성리학을 만들었다.
훈구파의 특징
문장을 중시해 뛰어난 문학작품이 많이 나왔다.
역사서술에 단군조선을 앞세워 우리 민족의 자주성을 강조했다.
부국강병 정책을 실시해 일본의 침략에 대비하려고 했다.
23. 조선시대의 법전의 간행순서
경국대전 1485년
속대전 1746년
대전통편 1785년
대전회통 1865년
24. 임진왜란 이전의 작품
15세기 안견의 「몽유도원도」
15세기 강희안의 「고사관수도」
임진왜란 이후의 작품
18세기 후반 김홍도의 「서당도」
18세기 전반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진경산수화)
25. 임진왜란 (壬辰倭亂) 이후 동아시아 정세와 조선의 대외정책
광해군은 명과 후금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펼쳤다.
친명배금 정책은 인조 이후의 사실이다.
임진왜란의 혼란기 중국에서는 여진족의 후금이 강성해져 명나라를 위협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그의 정권은 쇠퇴했고 이후 권력을 잡은 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였다.
후금의 세력 확장에 위기의식을 느낀 명나라는 후금을 공격하기 위해 조선에 원군을 요청했다.
26. 정조의 화성 건설
이곳 수원부는 현륭원 자리를 마련한 뒤로부터 관방이 더욱 중해졌다 …… 현륭원이 있는 곳은 화산이고 이 부는 유천이다. 화 땅을 지키는 사람이 요임금에게 세 가지를 축원한 뜻을 취해 이 성의 이름을 화성이라고 하였다.
아까 팔달산에서 멀리 바라보니 영부가 웅장하고 여염이 즐비해 참으로 큰 도회지였다. 5, 6 년 안에 취락을 이루고 도회지를 형성하는 것이 이렇듯 빨랐으니 내 마음의 기쁨은 진실로 한량없다. 성터의 형세에 대해서는 이제 막 감독하는 당상관에게 하교했다. 이 성을 쌓는 것은 장차 억만 년의 유구한 대계를 위함에서 비롯되었다.
정조의 정책
능력 있는 자들을 재교육시키기 위해서 초계문신제를 시행했다.
영조의 정책
군역의 부담을 경감하고자 균역법을 시행
사형수에 대한 삼심제를 엄격히 시행
속대전을 편찬해 법전체계를 재정리
27. 정약용의 형정 (刑政) 개혁론
흠흠신서에는 사법제도의 개혁 방안을 논했다.
목민심서에는 지방관이 지켜야 할 도리를 쓰고 있다.
경세유표에서는 정전제, 중앙 행정의 개혁 방안, 서양 과학 기술 도입 방안을 논하고 있다
마과회통은 마진에 대한 연구서로,제너의 종두법을 소개했다.
28. 조선후기의 사회 변동
임진왜란 이후 악화된 국가 재정을 확충하기 위해 조정은 납속 공명첩 등을 발행했다.
향촌에서 재지사족의 권위는 약화되었고, 새롭게 성장한 부농층은 관권과 결탁해 영향력을 강화했다.
조선 후기의 가족 제도는 부계 중심으로 변화했고 아들과 딸, 적자와 서자의 차별이 심화되었다.
사회 불안이 심화되고 기존의 가치관이(유교적 명분론) 힘을 잃어갔고, 예언 사상이 유행했다.
29. 조선후기 문화와 대표적인 작품
적벽도는 중국의 시인 소식이 쓴 적벽부의 내용을 그린 15 세기의 그림 (안견)
박지원은 양반전, 허생전, 호질, 민옹전등의 한문소설을 썼다.
김정희는 추사체를 만들었다.
18세기 후반 풍속화가 유행했다.
화가로는 김홍도, 신윤복 등이 있다.
신윤복의 작품은 단오풍정, 달밤의 여인, 주막도, 미인도 등이다.
30. 활빈당
전국에 흩어져 화적 노릇을 하던 이들은 1900년 전후 충청과 경기, 낙동강 동쪽의 경상도, 소백산맥 부근의 전라도 등지에서 활빈당을 조직해 각 지역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활동을 하면서 때로는 서로 연합하기도 했다. 활빈당은 평소에는 십여 명에서 수십 명씩 무리를 지어 때로는 군인으로 때로는 행상인으로 변장하고 다니며 활동했다.
활빈당은 대한사민논설에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토지의 균등분배와 쌀 수출에 반대하며 방곡령 실시
금광개발권과 철도부설권 등을 다른 나라에 넘기는 것 반대
활빈당의 일부는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일후 의병항쟁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영학당
영학당은 동학 남접 출신 최익서가 동학 농민군의 잔여 세력을 모아서 만든 조직
1898년 흥덕 농민전쟁을 지원하면서 활동을 시작
정부의 탄압을 피하기 위해 계조직이나 기독교 등의 종교조직을 이용해 활동
31. 조선이 외국과 맺은 조약
1. 조미수호조약(1882년) - 신헌과 슈펠트 사이에 한미수호조약 조인
2. 조영통상조약(1882) - 조영하와 윌리스가 한영조약에 서명
3. 조독통상조약(1883) - 한독조약이 조영하와 브란트 사이에 조인
4. 조영통상조약의 수정 (1884) - 민영목과 파크스 사이에 한영신조약이 조인
5. 조러통상조약 (1884) - 웨베르와 김병시가 한러 수호통상조약에 서명
32. 독립협회의 헌의 6조
1. 외국에 의존하지 말고 관민이 협력해 전제황권을 공고히 할 것
2. 광산 철도 석탄 산림 차관 차병과 외국과의 조약에 각부 대신과 중추원 의장이 합동으로 서명하지 않으면 시행하지 말 것
3. 전국의 재정은 모두 탁지부에서 관할해 정부의 다른 기관이나 사회사가 간섭하지 못하게 하고 예산과 결산을 인민에게 공포할 것
4. 중죄인을 공판에 회부하되 피고가 자복한 후에 재판할 것
5. 칙임관은 황제가 정부의 과반수 동의를 받아 임명할 것
6. 장정을 신설할 것
다음은 홍범 14 조의 내용이다.
나라의 우수한 젊은이들을 파견해 외국의 문물을 익히게 할 것
33. 명성황후 시해 사건 오도리 게이스케
오도리 게이스케
1893년 조선 공사로 부임, 동학농민운동 당시 군대를 이끌고 경복궁을 점령 조선군을 무장해제 시킴, 이로 인해 청일전쟁이 발발
이노우에 가오루
특명전권 부변리대신으로 한국에 와서 강화도 조약 체결
전권대사로 한성조약을 체결
고무라 쥬타로
포츠머스 회의에 전권대사로 참석, 한일의정서 문안작성
34. 의열단의 활동
민중은 우리 혁명의 대본영이다. 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 무기이다. 우리는 민중 속에 가서 민중과 손잡고 끊임없는 폭력, 암살, 파괴, 폭동으로써 강도 일제의 통치를 타도하고, 우리 생활에 불합리한 일체 제도를 개조해 인류가 인류를 압박하지 않으며, 사회가 사회를 수탈하지 않는 이상적 조선을 건설할지니라.
<조선혁명선언 (신채호)>
지문은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의 일부다.
신채호는 의열단에서 활동했다.
의열단의 활동
1926년 계급타파와 토지평균 등을 지도이념으로 하는 20개조의 강령을 발표하고 민족협동운동에 참여할 것을 선언
신민회의 활동
유화현 삼원보에 경학사와 부민단을 세우고 신흥강습소를 설립해 독립군 간부를 양성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
독립자금과 국내 정보를 모으기 위해 교통국을 설치하고 연통제와 해외 동포를 대상으로 한 거류민단제 등을 실시했다.
3.1운동 이후 만주의 독립부대
두만강과 압록강 부근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였고 때로는 국경을 넘어와 국내진공작전을 펴기도 했다.
35. 박은식 한국통사
옛사람이 말하기를 나라는 멸망할 수 있으나 그 역사는 결코 없어질 수 없다고 했으니, 이는 나라가 형체라면 역 사는 정신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나라의 형체는 없어져 버렸지만, 정신은 살아남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내가 역사를 쓰는 까닭이다. 정신이 살아서 없어지지 않으면 형체도 부활할 때가 있을 것이다.
박은식
한국통사와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저술해 일제의 침략과 민족의 독립운동을 정리했다.
신채호 조선 상고사
역사를 ‘아(我)’ 와 ‘비아 (非我 )’ 의 투쟁의 기록이라고 했다.
정인보 문일평 안재홍
조선학 운동을 전개하면서 세종과 실학자들의 업적을 높이 평가했다.
정인보
양명학과 우리나라의 5천년 얼을 정리해 민족정기를 세우려고 했다.
36. 1930년대의 사회문화 활동
1936년 손기정 선수가 올림픽에서 마라톤 금메달을 획득했다.
1923년 신분 차별을 폐지하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신념아래 진주에서 조선 형평사가 창립되었다.
1926년 나운규가 민족의 비애를 담은 영화 ‘아리랑 을 발표했다.
1927년 조선 여성들의 공고한 단결과 지위 향상을 도모하는 근우회가 조직되었다.
37. 한국의 독립과 관련한 회담
포츠담 회담 (1945.7)
일본군의 무조건 항복과 한국 독립을 재확인 했다.
카이로회담 (1943.11)
일본의 무조건 항복요구
한국을 자유 독립국가로 해방시킬 것을 결의
얄타회담 (1945.2)
소련의 대일참전 결정, 한국에 대한 신탁통치 및 38선 분할 결정
38. 미군정기의 사건(1945~1948년)이 아닌 것
남조선국방경비대가 창설 1946.6
여운형이 암살되면서 좌우합작은 무산됨 1947.7
이승만의 중심의 독립촉성국민 1946.2
친일반민족행위자 처벌을 위한 반민특위 해체 1949.6
39. 6.25 전쟁 발발후 경과
낙동강 유역 후퇴 (1950 년 7월)
인천 상륙 작전 (1950 년 9월 15일)
서울 수복, 평양 탈환 (1950 년 10월)
1.4 후퇴 (1951년 1월)
40. 1960년대의 사건
4.19 의거
3.15 부정선거 규탄 시위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1960
한일국교 정상화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가 한일기본조약을 체결 1965.6.22
제3공화국 출범
5.16 군사정권에 의해 제 2공화국이 막을 내리고 제 3공화국이 출범 1963.10
10월 유신
유신헌법이 공포 유신체제가 출범 1972.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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